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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들 (4) 로이 에머슨
조회수 | 2,967
작성일 | 07.01.16
2000년 윔블던 대회. 샘프라스와 래프터의 결승전이 열린 날이었다. 4세트만에 래프터를 제압한 샘프라스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고 샘프라스의 경기를 직접 관전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그의 부모님도 윔블던 관중석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때까지 부모님의 참관을 알지 못했던 샘프라스는 관계자들의 안내로 부모님이 계신 자리로 올라가 아버지 어머니를 차례로 얼싸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날 샘프라스의 눈물과 부모님의 참석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이날이 33년동안 깨지지 않고 있었던 하나의 기록을 갈아치워 테니스의 역사를 다시 쓰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샘프라스는 33년전 호주의 한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가 가지고 있었던 12개의 메이저 단식타이틀 기록을 뛰어넘어 13개의 기록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33년동안 최다 단식타이틀 기록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던 그의 이름은 다름아닌 호주의 로이 에머슨이었다.  그는 1936년 11월 3일 호주 퀸스랜드의 작은 마을 블랙버트(Black Butt)에서 태어났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소년시절 육상에 남다른 재질을 보여 가족들도 그가 훗날 육상선수로 대성할 것으로 믿었다. (이는 후에 테니스로 진로를 바꾸고 나서도 100미터 최고기록이 10초.6 이었고 멀리뛰기도 6미터 55 이었으므로테니스로 진로를 바꾸지 않았다면 육상선수로도 성공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에머슨 가족이 시골에서 대도시 시드니로 이사하고 당시 테니스 코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해리 호프만(Harry Hopman)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자신의 주종목을 육상에서 테니스로 바꾼 것에 대해 에머슨은 얼마전 호주의 상징인 캥거루에 빗대어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캥거루는 나보다 빨리 달리지만 나보다 테니스를 잘하는 캥거루는 없다. Jedes Kaenguru laeuft schneller als ich, aber keines spielt besser Tennis"(독일 Tagessport 2001년 11월 3일) 호프만의 테니스 학교에서 서브앤 발리형으로 키워진 에머슨은 60년대부터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59년부터 랭킹 톱텐에 진입한 그는 61년 US오픈과 호주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메이저 타이틀 사냥에 나선 것이다. 그는 이듬해 62년 그의 동료 로드 레이버(Rod Laver)가 역사상 두번째의 <4대 메이저 한해 달성>을 기록하는 바람에 주춤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63년부터 65년까지 매년 최소 2개씩의 메이저 타이틀을 따내며 랭킹 1위 획득, 호주오픈 5년연속 우승과 프랑스오픈 6년연속 복식우승 등의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66년 한번의 메이저 우승에 그친 그는 67년에 프랑스오픈과 호주오픈에 우승, 그동안 미국의 틸든(W. Tilden)이 가지고 있었던 메이저 단식 타이틀 10개(틸든의 기록은 테니스 초창기 US오픈과 윔블던에서만 거둔 것이었다)를 뛰어넘어 12개를 기록하게 된다. 기록면에서 보면 로이 에머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메이저 타이틀 12개를 뛰어넘은 오늘날의 샘프라스도 프랑스오픈을 석권하는데 실패했지만 에머슨은 서브앤 발리어가 우승하기 힘들다는 프랑스오픈마저 제패(63, 67), 4대 메이저를 모두 석권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그의 호주오픈 5연속 우승(63-67)과 도합 6회우승(61년포함)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뿐만 아니라 단복식 포함하여 총 28개에 이르는 메이저 타이틀도 아직까지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불멸의 기록이며 1959-1967년 9회의 데이비스컵 결승에서 8번 우승한 것 또한 기록중의 기록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1964년 프랑스오픈만을 놓쳐 <4대 메이저 대회 한해 달성>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당시 에머슨의 강력한 적수로는 동료인 로드 레이버(레이버에 대해서는 추후 발표예정)였다. 1960년부터 1969년까지 10년간 이 두명의 호주인이 거둔 메이저 타이틀은 22개. 10년간 전체의 반 이상을 단 두명이서 거둔 것 또한 기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에머슨은 당시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자기관리에 철저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테니스를 시작하고부터 코치의 도움없이 철처한 계획에 따라 체력관리를 해왔고 술과 파티, 노래를 좋아했으면서도 테니스 경기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되면 단호하게 거부하는 자기관리형의 인물이었다. 또한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연습하는 연습벌레로 알려졌는데 주로 두명의 복식 상대자들과 연습하는 '투온원 Two on One' 방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연습 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매치포인트까지 몰리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패배를 조금도 염두하지 않는 강심장의 소유자라는 것을 훗날 그의 라이벌 로드 레이버가 밝힌 바 있다.

60년대 테니스를 동료 로드 레이버와 양분했던 로이 에머슨은 또다른 후배스타들(켄 로스웰 Ken Rosewall, 존 뉴컴 John Newcome)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의 아들 앤토니 에머슨(Anthony Emerson)도 미국에서 테니스 선수로 성장했는데 특히 1978년 미국 하드코트 챔피언쉽에서 우승, 최초의 부자간 우승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국제 명예의 전당 선정 위원회는 전설적 기록을 남긴 로이 에머슨의 업적을 기려 1982년 그의 이름을 등재하였고 에머슨은 현재에도 로드 레이버와 함께 호주 테니스계의 큰 손역할을 하면서 호주 테니스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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